영남연합포커스 김진우 기자
지방자치가 본격화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선거철만 되면 지역사회는 여전히 뜨겁게 달아오른다. 골목마다 현수막이 걸리고, 거리마다 유세 차량이 오간다. 정책과 비전이 경쟁해야 할 선거판은 때로는 인신공격과 흑색선전, 확인되지 않은 소문으로 얼룩진다.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남겨진 상처와 갈등의 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과열되는 지역선거, 그리고 선거 전과 후의 극명한 온도차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선거 전 지역사회는 둘로, 때로는 셋으로 나뉜다. 혈연·지연·학연이 얽히고, 정치적 성향이 덧씌워지며 작은 마을까지 긴장감이 흐른다. 특정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인간관계가 소원해지고, SNS 공간에서는 거친 언어가 오간다.
공약의 실현 가능성이나 재정 건전성에 대한 토론보다 상대 후보의 과거 행적이나 주변 인물을 둘러싼 공방이 더 큰 이슈가 되기도 한다. 선거가 ‘축제’가 아닌 ‘전쟁’으로 인식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개표가 끝나는 순간, 선거는 행정으로 전환된다. 승자는 통합을 말하고, 패자는 결과를 수용하겠다고 밝힌다. 지지자들은 흩어지고, 공직사회는 새 집행부와의 호흡을 맞출 준비에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선거 전의 격렬함과는 다른 현실적 과제들이다. 예산 확보, 조직 안정, 민원 처리, 지역 현안 해결 등 구체적 행정이 기다리고 있다. 선거 기간의 언어가 감정의 언어였다면, 선거 이후의 언어는 책임의 언어여야 한다.
문제는 선거 과정에서 증폭된 지역감정이 선거 이후에도 일정 부분 잔존한다는 점이다. 특정 마을이 어느 후보를 더 지지했는지에 대한 소문, 선거운동에 적극적이었던 인물들에 대한 평가, 보직이나 인사에 대한 추측이 이어지며 불필요한 오해가 생긴다. 이러한 분위기는 공직사회의 사기를 저하시킬 뿐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결속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그렇다면 과열과 분열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만 돌릴 수는 없다. 후보자와 선거캠프는 물론, 이를 보도하는 언론, 이를 소비하고 확산하는 유권자 모두가 일정 부분 책임을 공유한다. 자극적인 언어는 주목도를 높일 수 있지만, 지역사회의 신뢰 자본을 잠식한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 제기나 과도한 비방은 단기적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지역 전체의 정치 수준을 떨어뜨린다.
법과 제도는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는 장치다. 공직선거법은 허위사실 공표와 비방을 엄격히 금지하고, 금품 제공 등 불법 행위를 처벌한다. 그러나 법적 기준을 지킨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형식적 준법을 넘어, 민주주의의 본질인 상호 존중과 숙의 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 선거는 상대를 무너뜨리는 과정이 아니라,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경쟁이어야 한다.
유권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감정적 동원에 휩쓸리기보다 정책의 내용과 실행 가능성을 따져 묻는 태도가 필요하다. 지역 발전 전략, 재정 운용 계획, 복지와 교육, 산업 육성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을 비교해야 한다. 후보자의 말뿐 아니라, 과거의 의정 활동이나 행정 경험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냉정함이 요구된다. 민주주의는 참여의 양뿐 아니라 참여의 질에 의해 성숙한다.
선거 이후의 통합 역시 중요하다. 당선자는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주민을 대표한다는 원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인사와 정책 결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고, 선거 과정에서 제기된 비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패배한 후보와 지지자들 또한 지역 발전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협력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야 한다. 갈등을 자산으로 전환하는 정치력이 필요하다.
지역감정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역사적 경험, 경제적 격차, 정치적 경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를 방치하거나 선거 전략으로 활용하는 순간, 공동체는 더 깊은 균열을 겪는다. 결국 지역의 미래는 선거의 승패가 아니라, 선거 이후 얼마나 성숙한 협치가 이뤄지느냐에 달려 있다.
과열되는 지역선거는 우리 민주주의의 또 다른 얼굴이다. 감정의 열기를 정책의 열정으로, 분열의 언어를 통합의 언어로 바꾸는 일은 특정인의 몫이 아니다. 후보자, 정당, 언론, 유권자 모두의 과제다. 선거 전의 격렬함이 선거 후의 책임감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지역정치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보다, 무엇을 바꿀 것인지 묻는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