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연합포커스 김진우기자

영덕군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진화된 지 시간이 흘렀지만, 그날의 긴박함과 공무원들이 감내한 사투는 여전히 생생하다. 불길이 산 능선을 넘어 주거지로 접근하던 그 순간,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간 것도, 마지막까지 잿더미 속을 걸어 다니며 잔불을 확인한 것도 모두 군청과 읍·면사무소 공무원들이었다. 그들은 “이번만큼은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72시간 넘게 이어진 초장기 대응에 몸을 내던졌다.
*“먼저 대피시키고, 우리는 뒤에 남는다”… 공무원들의 침착한 초기 대응
산불이 시작된 첫날 오후, 강풍으로 인해 불길은 예측 불가한 방향으로 번졌다. 주민 대피 판단은 몇 분의 망설임도 허용되지 않았다. 담당 공무원들은 가장 취약한 고령층과 거동이 불편한 주민의 집을 가장 먼저 뛰어갔다.한 공무원은 “주민 한 분 한 분을 직접 깨우고 팔을 붙잡아 대피소로 안내했다”며 “뒤에 남은 불길 소리가 너무 가까워져 있었지만, 그 순간엔 위험을 계산할 틈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행정 지원팀은 즉시 대피소를 열고 난방기, 침구류, 식음료를 밤새 확보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도착한 구호물품을 직접 나르고 분류한 것도 그들이었다. 다음날 새벽 군청 비상상황실에서는 주민 현황 점검, 대피자 명단 정리, 취약계층 소재 파악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불길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 “장비가 아닌 사람의 발이 더 빨랐다”
산림청·소방과의 공조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공무원들은 사실상 진화 보조 인력 역할도 동시에 담당했다. 무전기가 연결되지 않는 구역에서는 공무원들이 직접 현장을 뛰어다니며 상황을 전달했다.한 면사무소 직원은 “불길이 번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인력 이동이 늦으면 구조대가 위험해질 상황이었다”며 “결국 사람 두 다리가 가장 빠른 전달 수단이었다”고 회상했다.
진화장비가 부족했던 초기, 공무원들은 삽과 갈퀴를 들고 산비탈에서 절벽처럼 떨어지는 낙엽을 걷어내며 불길이 주거지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방화선 확보 작업을 도왔다. 이들은 진화대원 뒤에서 물통을 나르고 장비를 정비하며 ‘그늘 없는 지원군’으로 움직였다.
*산불 뒤 더 고된 ‘보이지 않는 일’… 피해 조사·복구·민원 폭주
산불이 꺼진 뒤에도 공무원들의 업무는 오히려 더 늘어났다. 피해 농가 조사, 산림 훼손 면적 산출, 길·배수로 복원 대책, 농작물 피해 보상 신청서 접수 등 끝없는 행정 절차가 뒤따랐다.불씨가 꺼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군청 민원실에는 “우리 지역은 왜 이렇게 늦게 지원이 나오냐” “피해 산정이 너무 적다” 등 항의도 쏟아졌다. 일부 공무원들은 하루 14시간 넘게 민원을 응대하며 정신적 소진을 호소했지만, 대부분은 “지금은 누구도 쉬어선 안 되는 시기”라며 자리를 지켰다.
복구 예산 확보를 위한 정부 보고자료 작성도 밤새웠다. 산림훼손 지형의 사진 수백 장을 비교하며 실제 피해 범위가 과소 산정되지 않도록 일일이 검증했다. 또 장기 복구계획 검토 회의가 연일 이어져, 진화 종료 후에도 비상근무 체계는 사실상 한동안 계속됐다.

*‘행정의 보이지 않는 손’ 다시 드러나다… 재난 대응 체계에 남은 숙제
이번 산불 대응 과정은 영덕군 공무원들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피해 규모가 수배로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시스템 측면의 아쉬움도 여전히 남는다. 일부 일선 직원들은 “재난이 발생하면 모든 공무원이 사실상 물리적·정신적 무한대 근무를 하게 된다”며, 인력 확충과 안전장비 지원 체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재난 현장에서 지방 공무원의 역할이 ‘보조자’ 수준을 넘어 사실상 최전선 대응자로 확장됐지만, 그에 걸맞은 보호장치나 제도적 보상은 부족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산불은 장시간 대응이 필수적인 만큼, 대응 인력의 교대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우리는 영덕을 지켰다는 사실 하나면 충분합니다”
산불 진화 마지막 순간, 잔불 제거 작업을 마치고 늦은 밤 마을을 내려오던 공무원들은 서로 눈을 맞추며 짧게 말했다.“그래도… 지켜냈네요.”
큰 박수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없었다. 그러나 주민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와 불탄 자리를 확인하고 눈물을 훔치던 그날, 공무원들은 조용히 현장을 떠나 또 다른 민원 현장으로 향했다. 그들의 이름은 기사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지만, 이번 산불에서 영덕군을 지켜낸 가장 중요한 축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영덕군 산불은 이미 지나간 사건이 되었지만, 그 불길 속에서 묵묵히 뛰었던 공무원들의 헌신은 여전히 지역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으로 남아 있다.








